[외국전쟁영화] 포탄의 섬광 (Blessed By Fire, Iluminados Por El Fuego)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을 다룬 실화)

출처: http://blog.ohmynews.com/gompd/149268



1982 년 4월 2일 이른 새벽, 아르헨티나 해병대가 남아메리카 남단 영국령 포클랜드(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라 부릅니다.) 제도의 수도 ‘포트 스탠리’를 기습 침공함으로써 포클랜드 전쟁의 막이 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전라남도 면적과 비슷한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로부터 680Km, 영국으로부터는 무려 1만 3천Km나 떨어진 외진 곳으로 당시 인구는 1,800명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남극 대륙의 전진기지로, 주변에 상당한 양의 석유자원이 매장된 자원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구의 대부분이 목축업에 종사하는 황량한 섬이었습니다. 이 섬에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제국주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 세기 중엽, 남아메리카 전역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스페인은 이미 포클랜드에 거주하고 있던 프랑스·영국인들을 추방하고 이곳을 식민지로 지배했습니다. 1808년 스페인이 나폴레옹에 정복돼 막강했던 힘을 잃자 아르헨티나는 1816년 독립을 선포했고, 1820년 이곳에 대한 소유권도 공식 선언합니다. 하지만 1883년,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영제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앞세워 이 섬에서 아르헨티나 수비대를 몰아내고 자국의 속령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르헨티나는 그 후 포클랜드 전쟁이 터질 때까지 150여 년 동안 포클랜드 제도의 반환을 영국에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이빨도 먹혀들지 않습니다. 20세기 들어 계속된 군부 통치가 이어진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상황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죠. 1981년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직에 오른 ‘갈티에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민심이반에 따른 반발을 외부로 표출하고자 포클랜드 침공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죠.

포클랜드를 침공한 아르헨티나군.

 


2 천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고, 1만8천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한 아르헨티나는 그러나 영국의 전쟁의지를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남성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아르헨티나 군부 지도자들은 영국의 여성 총리 ‘마가렛 대처’가 전쟁이라는 모험을 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속단하고 있었죠. 하지만 영국 정부가 이 쓸모없고 황량한 섬에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아르헨티나의 낙관과는 달리 영국의 여론은 ‘침략자에 대해 응징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침공 3일째 되는 4월 5일 항공모함 2척을 포함한 43척의 기동함대가 편성되어 포클랜드로 항진합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이 이끄는 영국 정부는 미국과 UN을 통한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포클랜드 탈환을 위한 무력사용을 준비합니다. 난처해진 것은 미국 정부였습니다. 미국은 영국과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 아르헨티나와는 미주기구로 엮여 있어, 대놓고 한쪽 편을 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무장관 ‘알렉산더 헤이그’를 특사로 양국에 번갈아가며 파견했던 미국정부는 대처 수상의 결연한 전쟁의지와 아르헨티나의 완강한 태도 사이에 고민하다 결국 영국의 편을 들기로 결정하죠.


포 클랜드 탈환 작전에 동원된 영국군 병력은 모두 9천 여 명으로, 본토로부터 가까워 군수지원이 유리한데다 병력 수에서도 우위에 있는 아르헨티나 군에 비해 열세인 듯 보였지만 전문 직업군으로 이루어진 영국군은 전투원 개개인의 기량이나 지휘관의 능력 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본토를 출발한 뒤 상륙작전이 개시될 때까지 46일 동안 해상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통해 전투에 대비합니다. 또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남반구인 포클랜드 제도는 4,5월이 초겨울입니다. -곰PD주) 포클랜드의 기후에 대비해 동계적응 훈련을 병행한 결과 아르헨티나 군에 비해 훨씬 잘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갖춥니다.

영국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맞아 침몰하는 아르헨티나 해군 순양함 '제네럴 벨그라노'.

5월이 되자 본격적인 지상전을 앞두고 포클랜드 제도 인근 해상은 첨단 병기들의 경연장이 됩니다. 영국군은 멀리 떨어진 기지에서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장거리 폭격기를 동원하고, 항공모함에서는 수직이착륙 전투기 ‘해리어’를 출격시켜 섬에 주둔한 아르헨티나군을 공격합니다. 이에 맞서 아르헨티나군은 영국 기동함대에 대한 공습을 시도하니 양국 전투기간에 격렬한 공중전이 전개되죠. 5월 3일 아르헨티나 해군 순양함 ‘제네럴 벨그라노’가 영국 잠수함 ‘콩커러’의 어뢰에 의해 격침되는가하면, 이튿날에는 영국 구축함 ‘쉐필드’가 아르헨티나 전투기가 발사한 ‘엑조세’ 미사일에 의해 격침되는 일이 발생 합니다.

 


'슈페르 에땅다르'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엑조세' 미사일.

 

'엑조세' 미사일에 피격당해 불타고 있는 영국 방공 구축함 '쉐필드'.

포 클랜드를 탈환하기 위한 상륙장소로 영국군은 수도 포트 스탠리 대신에 섬 반대편 50마일 지점의 산 카를로스항을 택합니다.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포트 스탠리이지만, 그곳에 대한 직접 공격은 수비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고 아르헨티나군이 미처 예상치 못한 곳에 상륙하여 지상을 통해 포트 스탠리로 진격한다는 계획이었죠. 5월 21일 새벽 4시, 함포사격과 함께 영국군이 상륙을 개시합니다. 허를 찔린 아르헨티나군은 조직적인 저항을 포기한 채 철수하기에 급급하죠. 5월 27일까지 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한 영국군은 포트 스탠리를 향해 진격을 개시합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50마일의 험준한 산길을 가로질러 진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해안에서 도망친 아르헨티나군은 산 카를로스에서 포트 스탠리에 이르는 산악지형 곳곳에 방어 진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죠. 주요 전투는 5월 28일 ‘다윈’과 ‘구스그린’ 지역에서 벌어집니다. 강한 돌풍과 짙은 구름으로 함포 및 항공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영국군은 아르헨티나군의 기관총 진지 앞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대대장이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다가 전사하는 등 악전고투 끝에 아르헨티나군을 물리칩니다.



6 월 12일 야간부터는 포트 스탠리 코앞까지 진출한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죠. 포트 스탠리 방어에 동원된 아르헨티나 군은 약 2개 여단 병력으로 2개월간에 걸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동기가 없었습니다. 결사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영국군 앞에 아르헨티나 군인들 사이에 심리적 동요가 일어나고 한순간에 방어진지는 무너져 내립니다. 소총을 내팽겨 치고 도망하는 아르헨티나군은 이미 군대가 아니라 무질서한 군중에 불과했습니다. 영국군은 패주하는 아르헨티나군을 포위망에 가두고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을 통해 압박을 가해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완전항복을 받아 냅니다. 아르헨티나의 기습침공으로부터 74일만의 일이었죠. 작은 섬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결과 쌍방이 입은 피해는 막심했습니다. 영국군은 전사 256명, 부상 2,600명, 아르헨티나군의 인명피해는 전사 670, 부상 994, 포로 10,951명에 달했습니다.

패주의 흔적, 버려진 아르헨티나군의 철모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아 르헨티나군의 패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졸속 진행된 원정에다 병사 개개인들에게 왜 싸워야한다는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영국의 공수부대, 해병대, 구르카 부대들로 이루어진 정예 직업군대의 전투 기량과 정신력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죠.       

포트 스탠리를 탈환한 영국 해병대원들.












좋은 리뷰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출처: http://www.stevenh.co.kr/entry/%ED%8F%AC%ED%83%84%EC%9D%98-%EC%84%AC%EA%B4%91-Iluminados-Por-El-Fuego-2005%EB%85%84-%EC%95%84%EB%A5%B4%ED%97%A8%ED%8B%B0%EB%82%98-%EC%8A%A4%ED%8E%98%EC%9D%B8

포탄의 섬광 (Blessed By Fire, Iluminados Por El Fuego) 2005년 아르헨티나, 스페인 
펭귄과 물개, 갈매기들의 낙원인 아르헨티나 남단 남극해의 '말비나스섬' 영유권 분쟁으로 발발한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전쟁(Falklands/Malvinas War)을 배경으로 전쟁참전용사 출신의 에두가르도 에스떼반 기자가 1993년 발표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감독 : 트리스탄 바우에르 Tristan Bauer
출연 : 가스톤 폴스 Gaston Pauls 파블로 리바 Pablo Riva  케사르 알바라신 Cesar Albarracin  존 루카스 Jon Lucas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정부시위가 한창인 200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현직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은 1982년 포클랜드전쟁의 전우인 바르가스 (Alberto Vargas)의 아내 마르타 (Marta)로 부터 자살을 기도한 전우의 소식을 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는 상이용사로 힘겨운 삶을 살았던 바르가스 (Alberto Vargas)를 통해 20년간 잊으려고 노력했던 '말비나스(Malvinas)'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2 년 4월, 18세로 군에 징집된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가 속한 아르헨티나 9 공수여단은 군부독재정권을 위한 '애국'전쟁에 동원되어 '말비나스(Malvinas)'에 파견되어 영국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방어작전에 투입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들은 전투에 투입되기도 전에 음습하고 추운 남극근해 '말비나스(Malvinas)'섬의 해변 참호에서 '추위'와 '굶주림' '참호족' 등으로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지휘관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광을 통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무능력한 비전을 앵무새처럼 떠벌이며 강압적인 리더십으로 병사들을 관리한다.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는 이후 그의 책을 통해 "전쟁 초기부터 우리는 영국 해군 잠수함의 해상봉쇄로 보급품을 받지 못해 영국군과의 전투보다는 추위와 굶주림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를 견디지 못한 많은 수의 동료병사들이 적이 아닌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아 왔다"고 증언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러던 중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와 차모르 주앙 (Juan), 바르가스 (Alberto Vargas)은 부대 인근의 목장을 찾아 한마리의 양을 잡아 포식을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발각되어 바르가스 (Alberto Vargas)는 겨울비가 내리는 막사 외곽 맨바닥에 말뚝으로 묶이는 체벌을 받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 디어 영국 전폭기의 공습을 시작으로 영국군과의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영국군은 지상전과는 별도로 지속적인 함포사격을 통해 아르헨티나군을 압박하였다.  이런 포격으로 인한 심리적인 공포감이 병사들을 힘들게 하였고 지휘관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하며 강압적인 방식으로 병사들을 지휘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 스떼반 (Esteban Leguizamón)와 차모르 주앙 (Juan), 바르가스 (Alberto Vargas)은 전방부대로 전령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체벌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진 바르가스 (Alberto Vargas)는 그런 임무가 너무나 버겁기만 했다.  영국의 구르카군과 전투를 벌이는 전장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이들 중에서 차모르 주앙 (Juan)이 전사하고 바르가스 (Alberto Vargas)가 다리에 부상을 당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의를 상실한 아르헨티나군은 계속해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본토로의 후퇴가 결정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 국 영국군에 항복하기로 결정한 후 아르헨티나 지휘부는 '조국을 위한 영광스러운 전투'를 치하한다.  그러나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고통이었고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던가에 대한 회한이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간 '조국'에서는 그들을 결코 반기지도 않았고 영웅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의 고통을 가슴에 묻고 가족과 사회속으로 조용히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 후유증으로 바르가스 (Alberto Vargas)와 같은 사회부적응자들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 르가스 (Alberto Vargas)가 결국은 숨지자 에스떼반 (Esteban Leguizamón)는 20년만에 '포클랜드/말비나스'의 전쟁터를 방문한다.  그는 전우들과 함께 생활했던 참호에서 그들의 추억을 찾아내고 오열을 하고 차모르 주앙 (Juan)의 무덤을 찾아 바르가스 (Alberto Vargas)의 군번줄을 남긴다....

에 두가르도 에스떼반기자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지금도 영국군들이 쏘아대는 포탄의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동료병사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보다 더한 공포에 시달리며 절규하는 전우들의 모습을 보는 악몽을 꾸고 있다"며 " 애국심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명분 없는 전쟁에서 군부독재자들에게 이용당한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비극과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대로 고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단순한 군부 지도자들의 상황판단 실수로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전쟁에 애꿎은 젊은이들만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말비나스 전쟁 참전용사들이 종전 후 지금까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등 전쟁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증언한다.  - 스티븐의 영화보기

------------------------------------------------------------
실전에서 포격이 병사들의 심리를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이해를 돕고자 다음 영상을 올립니다.
박격포탄을 가까이에서 맞는 기분이 이렇답니다.
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낙하지점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죠.
신속히 그 위치에서 이동하지 않았더라면 mortar에 당했을 지도 모르죠.




다른 영상입니다.